공공의 이름으로/ C3 건축과 환경 5월호 건축단상 2005
공공의 이름으로
공중 public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온 퍼블릭(public)의 역어이다. G.르봉이 근대사회의 인간을 비합리적·충동적 존재로 보고, 미래사회를 ‘군중의 시대’로 본 데 대해서 J.타르드는 인간을 합리적·독립적·자유적 존재로 파악하면서 미래를 ‘공중의 시대’로 보았다. 19세기에서 공중은 이처럼 군중과 대립된 개념으로 규정되었다.
군중은 사람들이 동일장소에 집합함으로써 형성되는 데 대해서, 공중은 분산하여 존재하며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전달되는 정보를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유로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군중은 사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이른바 군중심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본 데 대해, 공중은 저마다 자유롭고 독자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의견의 최대공약수가 여론(public opinion:공중의 의견)을 형성하고, 이에 따라 정치는 민주적으로 행하여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재 공중의 이념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현대는 ‘공중의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로 이행(移行)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대중의 시대에서 공중은 소수의 엘리트와 대다수의 매스(대중)로 분열되는데, 소수의 엘리트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획일화되고 무기력해진 ‘모래와 같은 대중’ 위에 군림하며 여론의 조작을 통해 정치를 마음대로 행할 수 있게 된다.
-두산 ENCYBER 세계대백과 사전에서 인용
공공―성(公共性)[명사]
사회 일반이나 여러 단체에 두루 관련되거나 영향 따위를 미치는 성질.
The Gates
2005년 2월 12일 오전 8시 30분 뉴욕 센트랄 파크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뉴욕 공공미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개막을 알렸다. 이름하여 게이츠 프로젝트(GATES PROJECT). 부부 아티스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26년 전 구상이 16일 동안의 축제로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1979년 크리스토의 컨셉드로잉인 ‘천 개의 문’ ( THE THOUSAND GATES)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4.87미터의 높이의 게이트 7500개를 센트랄 파크 전역의 36.8KM의 산책길에 설치하는 프로젝트이다. 각 게이트는 그 상부로부터 샤프란색 나일론 패널이 걸려서 지면으로부터 2.13m 높이까지 늘어져, 보행자의 머리 위에 위치하도록 설치되었다. 작가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도시공간인 공원에 개입을 시도하여,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이 걷고 있다는 행위의 과정을 갑자기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보행자의 머리 위 공간을 활성화 시키고, 이는 산책로를 행렬과 의식의 공간으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1979년 최초의 구상으로 출발하여, 프로젝트 기획 안에 대한 환경단체, 지역단체로부터의 반대와 결정적으로 공원관리국의 거부로 26년 동안 논란 속에서 유보 되어 왔던 이 프로젝트는 예술애호가인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지지를 얻어 2003년 1월 설치허가를 받아, 2005년에 드디어 현실화 될 수 있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독자성과 자유를 위해 일체의 후원 없이 프로젝트의 전체예산을 관련한 드로잉, 콜라쥬, 초기작업 등의 판매로 충당했다고 한다.
‘Surrounded Island’, ‘The Pont Neuf wrapped’ 그리고’Umbrella’ 등 랜드스케이프나 도시구조물을 대상으로 ‘포장’ 혹은 대규모설치 작업을 해온 크리스토와 쟌 끌로드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냐는 질문에 자신들은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서의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할 뿐이며 그것은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이고, 공공이 그것을 보고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덤일 뿐 공공을 위해 작업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개인적인 접근, ‘나는 다만 아름다운 것을 실현하여 보고 싶다’ 라고 하는 예술가의 열정이 수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작품을 실현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프로젝트가 준비단계에든, 실현의 단계에든 거쳐왔던 다층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이 작가 자신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그 들의 작품에 공공성을 부여한다.
건축의 공공성
예술작품보다 더 현실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계획과 실현의 시스템을 가진 건축에서의 공공성은 어떤 것이며, 어때야 하는 가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 게이츠 프로젝트를 보면서 공공을 표방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얼마나 깊고 넓게 공중(public)과 영향을 주고 받았나 하는 것을 기준으로 어떤 프로젝트의 ‘공공성’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 공공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공언하면서 실지로는 미디어 플레이에 그치는 표면적인 의사소통에 급급한 도시와 건축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보면, 다만 아름다운 것을 보겠다고 하는 열정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시공간으로서의 ‘공원’의 의미를 다시 경험하게 만든 게이츠 프로젝트의 구체성과 현실성에 존경심을 갖게 된다.
볼 수 없는 것들을 구축하다.
필자는 어떠한 특수한 상황도 한 도시의 시스템적인 조건을 담고 있으며, 개별적인 프로젝트도 도시의 시스템적인 조건에 대응하는 건축의 원형(prototype)으로서 접근함으로써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유일한 가치로 건축을 이야기 하는 것은 왠지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이상을 펼치기 위해 제한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급예술로 건축을 다루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그만 그만한 ‘차이’들이 과다 생성될 뿐 총체적으로는 질적인 ‘다양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획일화되어 가는 소비사회의 도시와 건축 문화의 단면을 보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과 원형의 발견은 상대적인 ‘차이’를 추구하기 보다, 근원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공통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를 어떤 과정을 통해 현실화하고자 하느냐 이다.
게이츠 프로젝트가 보여주듯 열린 논의를 통해 공동체 사회의 동의를 얻고, 그 동의를 기반으로 실현이 가능한 경제적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자체는 결국 작가가 믿는 ‘가치’를 공유하는 행위가 되고, 그 또한 보이지 않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공공적인 프로젝트는 두 가지 결과물을 만든다, 한 편으로는 보이는 결과물을 또 편으로는 가치의 공유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의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결과물을.
시간
오래 담근 김치, 숙성한 와인, 그 형태를 알 수 없이 삭아 검어진 유자차, 십여 년을 손수 일궈 가꾼 숲. 게이츠 프로젝트는 26년을 기다려 16일간의 짧은 축제로 실현되었다. 이 들의 가치의 근간은 ‘시간’이다. 계획의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 수록, 시간은 중요한 계획의 변수이다. 공공의 프로젝트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긴 시간 동안 유지 되야 하는 중심가치에 대한 공유와 방법의 일관성이다. 그 생성에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결과물은 그 외형이 아니라 문화로서 복제되고, 그것을 즐기고 나누는 도시의 ‘축제’를 만든다. 공동체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새로운 씨앗이 되는 그런 축제를.
최근 서울에서 논의 혹은 진행 중인 대형 도시프로젝트들을 떠올려 본다. 청계천, 세운상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오페라 극장까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건축가로서, 나 는 그 시간의 일부가 되고 있는지, 그 프로젝트들의 볼 수 없는 부분을 만들어가는데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