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리이야기/조재원+황두진, poar 2004 6월호 focus 원고

만수리이야기/조재원+황두진, poar 2004 6월호 focus 원고

 

만수리 이야기

‘6시 내고향’은 KBS에서도 장수 프로그램에 속한다. 방영회수가 이미 3000회를 넘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농어촌 마을을 소개하는 성격이었는데 최근들어 ‘백년가약’이라는 새로운 코너를 신설, 전국의 농어촌 마을 100개를 고치는 야심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MBC에서 해 온 러브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지만, 작업의 대상이 개인이 아닌 코뮤니티라는 점이 다르다. 한편 각 마을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를 통합 운영하여 지속적인 홍보작업을 한다. (http://www.mygohyang.net/main.asp) 프로젝트를 위한 비용은 삼성의 사회봉사단에서 지급되며, 부분적으로 협찬과 기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작지만 나름대로 공공적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우연한 시작

 

황: 금년 초의 일이다. 직원들과 시무식을 하면서 현상설계나 턴-키와 같이 고질적으로 문제 있는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으면서 공익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소망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알지도 못했고, 그냥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100% 민간시장에서만 일해 온 건축가의 독백이랄까, 그런 것이었다.

 

황: 일의 직접적인 발단은 어느 날 걸려온 전화였다. KBS의 나원식 피디라는 분이었는데 초면이었다.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 기획에 대한 설명을 했다. ‘러브하우스의 코뮤니티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라는 설명으로 충분했다. 일단 공공성이 있는 일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무조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당일 나 피디가 사무실을 찾았다.

전반적인 진행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내가 처음 하게 될 프로젝트는 전라남도 화순군의 어느 작은 마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것이 몇 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일의 성격상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업의 대상이 코뮤니티면 나도 개인으로 작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조재원 소장에게 연락을 했고, 다행히 나와 뜻을 같이할 수 있겠다는 답을 들었다.

아울러 KBS에서는 시공 팀까지 우리가 선정해주기를 원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세 회사 중에서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우리는 이질적인 집단이다.) 이 역시 이전에 KS 병원 프로젝트에서 설계자와 시공자로 만난 적이 있던 본 디자인의 백운형 소장에게 이야기를 하니 흔쾌히 동참하겠다고 했다. 급조된 프로젝트 팀이 하나 만들어졌다.

 

조: 4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책상에 앉아 자신을 학대하고 있던 중 황두진 소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농촌, 마을 공동체, ‘6시 내 고향’ 등등의 몇 단어를 듣고는 소위 필이 꽂혀, 해야만 하는 일을 제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영역의 경제활동을 일구는 제3의 자본을 자원으로 하는 건축과 도시 프로젝트는 어떤 것일 수 있을까 하는 오랜 궁금증에 조그만 단서가 될 프로젝트가 아닐까 하는, 배보다 큰 배꼽 같은 희망을 갖고 시작했다. 설계에 데드라인이 있다면 방송에는 방영일자가 있었다. 설계에서의 그것보다 더 막무가내이고 첨예한 마감까지의 시간은 3주가 채 안되었다.

 

만수리 읽기

 

황: 일단 일이 시작되자 완전히 상식을 초월한 스케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일정은 방송국의 제작과정과 맞춰야 했다. 공기는 2주도 채 되지 않았고 우리는 그야말로 밤낮 없이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이 일에 매달렸다. 사무실의 다른 일도 동시에 진행해야 했으므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우리의 작업 대상인 전라남도 화순군 만수리의 사정은 이러했다. 원래 과일농사로 잘 살던 마을이었다. 꽤 통행량이 많은 국도변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도로변 직판장을 통해 상당한 수입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소위 신작로, 그러니까 신국도가 개통되면서 차량의 흐름이 뚝 끊겼고 마을의 경제 상황이 아주 나빠졌다. 모든 시골 마을이 그러하듯이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조: 만수리 멀리 읽기- 새로 난 도로 때문에 차량접근이 줄어 도로 옆 직판장에서의 소득이 줄었다는 설명과, 팻말만 있는 작은 간이역을 잇는 완행선의 이용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속도로, 고속철 등 빠른 속력을 가진 기반시설이 이렇게 작은 농촌마을에 주는 혜택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수리의 어려움은 단지 만수리의 것만이 아니라, 속도가 주는 혜택에서 거리가 있는 ‘느린’ 연결이 더 소중한 농촌지역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연결을 가진 도시거점을 중심으로 완행기차의 활성화와 간이역들의 연계, 아름다운 국도의 연결 같은 느린 연결 망을 갖춘 농촌마을들의 고유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조: 만수리 가까이 읽기- 만수리는 기차길 옆에 자리 잡은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건널목을 건너 외지인을 반겨주는 마을회관은 비교적 새 건물로 마을사람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긴 했지만, 왠지 무뚝뚝했고, 마을 앞마당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마을 뒤의 경사지엔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과수원이 있었으나, 마을 입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골목길은 깨끗했고, 차 한대가 다닐 수 있을만한 넓이로 잘 정돈된 편이었다. 마을입구에서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마을을 관통하는 골목길은 꺾어지면서 또다시 이어지는 골목길의 풍경이 재미있었으나, 적당히 시선을 가리는 높이의 담 때문에 집안의 다양한 풍경과 이어지지는 않았다.

 

황: 우리는 이 마을에 대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무엇보다 이 마을의 특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과일마을’이라는 테마를 잡고 이것을 중심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다행히 만수리의 기본적인 환경은 상당히 좋았다. 국도와 마을 사이에는 경전선 철로가 지나고 있어 철도변 마을로서의 독특한 정취가 있었다. 게다가 그 국도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수많은 메타 세콰이어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그런 길이었다. 마을 뒷산에는 복숭아 및 배 과수원이 경사지를 따라 넓게 펼쳐져 있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새가 울며, 기차 경적이 들리는, 그런 마을이었다.

 

팀웍

 

황: 급조된 팀이고 워낙 작업의 여건 좋지 않아 팀웍은 불안했다. 하지만 지내놓고 보니 그렁저렁 굴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환상의 팀웍이었다. (갈등과 대립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사전계획과 역할분담이 성공적인 작업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마치 재즈에서 서로 애드립을 하듯이 눈치와 일머리로 알아서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루한 현장회의를 반복하는 것 보다 화끈하게 한잔 마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경우가 그랬다. 결국 마음이 통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 새로운 팀과 일하는 것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설계도 두 팀이고, 그래픽디자이너로 참여한 parpunk도 우리와는 처음 손발을 맞추는 팀이었던 데다, 설계시공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판에 시공하는 분과의 의사소통이 무척 중요했다. 크게는 방송사의 피디들과 작가들과도 의견조율을 하면서, 궁극적인 건축주인 불특정한 마을 분들과 의사소통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이 서로 과욕하지 않고 각자 역할에 집중하도록 하여 급조된 팀의 한계보다는 잠재력이 더 발현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안

 

조: 마을 분들이 공동으로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진 시설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제안이 덧붙여져 몇 가지의 소규모 프로젝트들로 수렴되었다.  나는 실현되지 못한 제안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계획의 아주 초기에 마을입구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간이역을 마을 입구로 근접시켜 플랫폼과 직판장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역간의 간격이 4km 미만이 될 수 없다는 철도청의 규정상 불가능 했다. 초반에는 이 철도라인을 통해 이어져 있는 마을들의 재생모델의 원형으로 만수리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흥분하기도 했었는데……

두 번째로, 마을회관의 전면을 투명하게 만들어 그 앞에 새로 지어질 데크와 연결하자는 우리 제안은 의외로 마을 분들의 우려 섞인 반발이 있어서 실현되지 못했다. 전해 듣기로 마을회관의 1층에 찜질방과 운동시설의 이용이 남녀를 구분하여 이용시간이 정해졌다고 하니 남녀가 유별한 문화와 연관 있지 않았나 짐작할 따름이다. 짧은 시간에 마을 공동체와 의사소통 하려 하니 대표성을 가진 제한된 채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 표면적인 소통에 그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황: 우리는 마을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외지 사람들을 마을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했고 그러자면 그들이 마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작업들을 하기로 결정했다.

 

버스 정류장

황: 기존 정류장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작은 벽돌 구조물이었다. 이것은 나름대로 시대적 상징이므로 유지하고 그것과 결합하여 새로운 버스 정류장 및 마을 입간판을 세우고자 했다.

 

직판장

황: 직판장은 우리가 한 일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원래 마을에서 떨어져 있었으니 우리는 마을의 구조와 결합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도로나 철길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도록 반복적이며 기하학적인 형태를 취했다.

 

마을 앞 광장 및 마을 회관

황:’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공간’이란 개념으로 접근하였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평상과 같은 것을 만들고자 했다.

 

복숭아 길

황: 마을 뒷산 과수원으로 가는 골목길을 우리는’복숭아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족단위로 과일을 따는 행사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안이었다. 복숭아 길에는 복숭아를 주제로 한 장장 150m 길이의 벽화가 그려졌는데 도안은 홍대 인근의 그래픽 디자인 그룹인 Parpunk에 의뢰하였다. 한편 이 복숭아 길의 담 여기저기를 절개하여 주민들의 사진을 담은 액자를 설치하였다. 주민들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사진들은 그 자체로서 훌륭한 삶의 기록이며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와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철도변 길

황: 복숭아 길과 마찬가지로 Parpunk에서 디자인을 했다. 철도와 메타 세콰이어 길, 과수원을 소재로 이 마을의 정취를 표현했다. 벽화작업은 광주 인근 지역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맞아주었다.

before and after

 

황: 환자에게 약을 투여했으나 아직 결과는 모르는 의사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한 일이 마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우리 농촌이 갖고 있는 문제는 이 정도 처방으로 고쳐질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새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러니 대증요법은 아니었던 셈이다.

우리가 마을 사람들과 나눈 대화 중에는 ‘이것은 일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방송에 나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작업을 했고 그 결과 또한 전달했다. 향후 마을 사람들의 주도로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조: 배보다 큰 배꼽 같은 희망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고 나면 역시 배꼽은 배보다 작다는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하지만 한 개의 배꼽은 작지만, 이런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언젠가 배보다 커질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완공이 되고 마을잔치가 있던 날에 복숭아길이라고 이름 지은 길을 걷다가 담을 뚫고 삽입된 액자의 투명한 여백을 통해 집안의 툇마루에 나와 앉아 있던 마을 주민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했던 순간이 아마도 나에겐 after의 가장 강렬한 기억 아닐까 싶다.

 

공공성

 

황: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다면 참여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공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건축주를 상대로 일하면서도 공공성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단지 이 프로젝트의 기본 포맷이 공공성이라는 문제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여건은 주어졌으되, 공공성의 확보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조: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성을 표방하는 것과 공공성 있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이 무척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방송의 속성, 건축의 속성

 

황: 순간의 이미지를 다루는 방송과 영속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건축. 어떻게 보면 완전한 상극의 두 분야가 함께 모인 것 같은 상황이다. 여담이지만 우리 건축가들과 방송국의 피디들은 서로의 직업에 대해 호기심이나 환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그것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일 그 자체보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의식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조: 건축 같은 방송이 있고 방송 같은 건축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은 한 공간의 지금 당장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남을 것들을 한 순간에 압축하여 구축하려 한다. 때로 그 욕심이 과하거나 못 미칠 때 건축은 한 건축가의 독백이 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 같은 방송은 사물과 사건의 현재적인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고 그 이면의 관계와 전후의 시간을 압축하여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때로 방송이란 순간의 이미지에 대한 대중이 기대고 있는 환상과 환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것을 소비하는 매체가 되기 쉽다. 방송 같은 건축은 마찬가지로 대중이 가진 순간적인 기호에 맞추어 화장하듯 디자인 하는 것이리라.